상냥한 폭력의 시대는 정이현 작가의 소설집이다.
부드러운 표지의 질감 덕에
차분해진 마음으로 첫 장을 펼쳤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 표지. 질감이 아주 부드럽다.
감탄했다. 한 장을 채 읽기도 전, 응원하게 될 작가를 또 한 명 찾았음을 알게 됐다.
매력적인 문장력도, 인간 삶과 감정에 대한 통찰도 대단했다.
짧은 메시지에서 나타나는 진의를 파악해내는 날카로움은 조금 두렵기도 했다.
책이 어렵지는 않지만 내 이기를 들키는 기분이 종종 들어 마냥 편히 읽지는 못 했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는 선택의 결과, 혹은 선택할 새 없이 이미 일어나버린 것들을 안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것은 집, 사람처럼 물리적인 것들이기도 하고 죄책, 후회, 미련 등 감정이기도 하다. 작가는 극 중 인물의 선택에 어떤 가치판단도 하지 않는다.
다만, 선택에 따른 결과만을 남겨둔다.
그래서 인물들의 선택 하나하나는 '이런 삶도 있어. 너라면 어떻게 할래?' 라는 아주 무미건조한 질문과 같이 느껴졌다. '당연히 이 인물들처럼 후회하며 살고 싶지는 않지.' 라고 생각했다.
상냥한 폭력의 시대 (139page)
하지만 알고 있다. 생각은 행동보다 쉽기에 오만하다. 정말 '나의 일'이 된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후회 없이 살겠다는 내 마음도 다가올 미래라는 바람 앞 등불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물며 그 선택이라는 것이 상냥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온다면.
무섭지 않게 쓰인 책이 너무 무서웠다. 조급히 대비해야겠다는 가쁜 마음이 들었다. 적어도 그 크기를 줄일 수 있는 삶은 가능하지 않을까. 적어도 '어떤 부분에서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라는 기준을 세워두면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자라며 선택의 책임이 점점 커짐을 느끼는 요즘이기에 마음이 급해진다.
책을 다 읽고 글로 정리하면서도 무엇하나에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했지만, 덕분에 흙 고르기 정도는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흡입력 있게 빠르게 읽은 책은 오랜만이라 쉽게 글을 정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어떤 책보다 어려웠다. 쉽게 읽히되 깊게 고민하게 하는 글의 힘을 다시 느끼게 한 책이다.
'추천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평]헤르만헤세의 어린 날을 그린 <수레바퀴 아래서>/스포일러 포함 (2) | 2024.05.07 |
---|---|
[서평] 시장에서 살아남는 기업의 특성 (Good to Great) (6) | 2021.02.17 |
[서평] 나의 하루는 4시 30분에 시작된다 서평 (0) | 2020.11.25 |
[서평]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책 추천) (0) | 2020.09.05 |
[서평]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0) | 2020.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