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책을 많은 사람과 나누자고 다짐했지만, 오랜만에 혼자만 읽고 싶을 만큼 욕심나는 좋은 책이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명확했다. '미술'이라는 주제로, 알랭 드 보통이 쓴 책이기 때문이다. 고흐, 모네 등 누구나 알만한 화가를 몇 좋아하지만, 그 이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에 관련 주제의 책을 읽어보고 싶었다. 특히 추상화, 현대 미술을 보는 눈을 기르고 싶어서 다른 책보다 관심이 갔다.
이 선택을 확신하게 한 건 작가인 알랭 드 보통 덕분이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표현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읽는 내내 감탄했다. 동시에 그 표현력을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아득한 거리감을 느꼈었다. 이런 작가가 미술 작품을 보는 시각은 어떨까. 어떤 표현으로 작품을 설명할까. 책이 배송되는 내내 기대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고 조금은 알게 됐다. 알랭 드 보통은 끊임없이 세상과 호흡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 가능했다는 것을. 그의 글에서 썼듯, 그는 예술을 통해 삶을 보고 삶을 매 순간 예술로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책은 개인이 어떻게 하면 예술을 사랑할 수 있을지, 예술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지 돕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대중과 예술의 거리감을 지적하며 예술과 밀접하게 관계된 갤러리, 미술상의 역할에 관해서 알랭 드 보통의 날카로운 통찰력, 문장력을 바탕으로 설득해 나간다.
알랭 드 보통이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말하는 것은 예술의 역할이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역할 중 하나는 '예술은 습관화로 말미암은 불행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해 준다'는 것이었다. 알랭드보통은 습관화를 인간의 특성 중 하나로 보고 있지만, 상업화가 습관화를 가속화 한다고 주장한다. 상업화(상업 이미지)는 '새로운 것', '화려한 것'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주입하는 것을 통해 우리 삶을 지루하게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이유가 어떻든 우리는 결국 많은 것들에 익숙해진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어떤 새로운 것이라도, 혹은 어떤 사람이라도. 그와 동시에 그 가치를, 소중히 여겼던 마음은 새로운 어떤 것의 뒷전으로 이내 미뤄진다. 이때, 예술은 그런 지점들을 포착할 수 있게 도와서 우리가 잊고 사는 것의 가치를 상기할 수 있도록 한다.
책에서는 그 예시로 샤르댕의 '차 마시는 여인'을 들었다. 습관화에 관한 내용이 인상 깊었던 만큼 책에서 가장 좋았던 그림이기도 하다. 패턴 하나 없는 말끔한 벽을 배경으로 한 여인이 나무 의자에 앉아있다. 하얀 곱슬머리의 통통한 여인. 품 넓은 옅은 초록색 치마를 입고 어깨에는 초록 숄을 걸쳤으며, 반짝임 없는 작은 귀걸이 역시 옷에 잘 어울리는 초록색이다. 탁자 위에는 방금 뜨거운 물을 부어 김이 오르는 차가 한잔, 그리고 차 한잔만큼의 뜨거운 물을 덜어냈을 주전자가 놓여있다. 여인의 의복에서부터 탁자, 찻주전자까지 그림에 화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일상에서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에는 어떤 특별함이 느껴지지 않으며, 누군가가 주목할만한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화폭 안에서 일상의 소박함은 예술이 되었다. 이 그림을 보는 우리는 화려함에서만 찾던 아름다움을 소박함에서도 찾을 수 있게 된다. 작품 감상을 끝내고 눈을 돌려 내 삶을 들여다보면,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했던 내 삶에도 예술이 되는 지점들이 가득했음을 깨닫게 된다. 하루 중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을 감사하게 되며, 차 한잔 마시는 여유뿐만 아니라 내가 이미 가진 것들을 새로이 들여다보게 되고 감사하게 된다. 이런 작품을 가까이 두면 끝없이 새로운 것을 찾는 불행 대신 현재에 감사하는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예술과 가까워지기 위해 읽은 책인데, 내 삶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을 읽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공개된 예술 작품이 '나'를 만나 보편에서 특수로 이어지는 과정을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에 예술이 꼭 필요하다는 말에 비로소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 한 권을 읽고 작품을 보는 눈이 생겼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책에 쓰인 해설을 보고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작품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미술관에 가서 '나와 공명할 수 있는 작품'을 한두 점쯤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아쉬운 부분은 알랭 드 보통의 글 자체보다 번역에 있었다. 특히 책 앞부분에서 문장이 길어서인지 이해가 어려운 번역문이 몇 있어서 읽는 흐름이 끊기곤 했다. 가능하다면 원어로 읽는 것을 추천한다.
미술이 / 미술관이 멀게만 느껴지는 사람.
그러나 이제는 가까워져 보고 싶은 사람.
세상이 자주 지루하게 느껴지는 사람.
알랭 드 보통의 철학을 알고 싶은 알랭 드 보통의 팬. 에게 특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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